퍼온글: http://gdong.net 의 Renyts님께서 쓰신 글입니다.

 

1993년인가..영국에서는 한 설문조사가 있었다.

영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과학자는 누구인가?( 가장 위대한...이 아니다.)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영국에는 매우 위대한 과학자들이 많다...

증기기관을 만드신 와트 선생이라던지...
줄의 법칙을 만드신 줄 선생...
산소를 처음 발견하신 프리스틀리 선생
과학계에 있어서 이 사람 이름 빼먹으면 초사기라 불릴 정도로 세계 과학계를 발칵 뒤집어 놓은 거장 아이작 선생등등
영국 과학계에는 쟁쟁한 과학자들이 많다.

이 모든 사람을 제치고 압도적으로!! 영광의 1위에 오른 사람 그가 바로 마이클 패러데이 박사다. (사실 아이작 선생은 업적으로는 세계에 따라갈 자가 없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었지만 인간성은 좀 아니었다고 한다..피해망상증 기질도 있고...--;;)

마이클 선생은 세계에서 "글도 못 배우고 과학자가 된 단 두명의 과학자" 중 한 사람이다.(다른 한 사람이 누군지는 모른다.) 아쉽게도 그는 수학을 제대로 배운적이 없어서 죽을 떄 까지 미적분학을 몰랐으며 때문에 그의 연구 결과는 대부분 이해하기 쉬운 그림과 영어로 표현되어 있다고 한다. (이 부분에서도 인간성 드러나신다. 아이작 선생은 자기 잘난거 자랑하실려고 아무도 모르는 기하 미적과 라틴어를 이용하셨다. )

마이클 선생 열심히 일하시다.

마이클 선생은 종니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셨다. 뭐 어렸을 떄는 별 볼일 없이 그냥 농부 집에서 농사나 짓고 평범하게 살았던 모양이다. 그렇지만 그래도 그에게는 학자..라는 구체적 꿈은 없었지만. 배우고 싶다~ 는 열망은 있었던 모양이다. 그렇지만 패러데이의 집은 매우 가난했고.(비슷한 사람으로 플레밍이 있지만 플레밍은 그래도 처칠 구해주면서 팔자가 핀 케이스다. 노구치 선생도 어머니가 열내서 가르친 케이스고. ) 마이클 선생에게는 배움의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마이클 선생은 나이 좀 먹고 나서 인쇄소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지금도 그렇지만 인쇄라는 것은 원래 화학적 지식이 필요한 것이라. 마이클 선생은 여기서 아주아주 기본적인 화학의 원리와 글을(인쇄를 할려면 글을 알아야 할 것 아닌가.) 배우셨다고 한다. 마이클 선생이 인쇄소에 서 일한 것도 더럽게 일 하는 곳이지만 이곳에서는 읽을 것이 많기 때문이셨다고 한다. 마이클 선생은 신문이건 뭐건 닥치는 대로 읽어댔다고 한다. 특히나 쉬는 시간에는 인쇄물을 주륵주륵 읽는 것이 그의 중요한 일과중 하나였고 때로는 인쇄물에 나온 내용을 실험해 보기도 했다고 한다...(인쇄소를 실험실로 삼다...에디슨보다 선구자다!) 그렇지만 그는 인쇄소의 직원이었고 그가 할 수 있었던 것들은 한계가 있었떤 모양이다. 게다가 다시 실험기구 가격은 매우 비쌌다--;; 하지만 그는 거기서 실험 과학자로서의 기반을 다졌...다고 하기엔 무리가 있다.....--;;

농땡이를 피우며 일해서 (일에 충실하지 않고 실험만 열심히 해 댄) 여러번 잘려 버린 에디슨 선생과는 달리 패러데이 선생은 일을 매우  , 열심히 잘했다고 한다. 얼마나 잘했느냐면 가게 주인이 스스로 알아서 주급을 올려줄 정도였다고 한다. 패러데이가 과학에 관심이 많고 또 매우 열심히 일하는 것을 안 인쇄소 주인은 당시 유행하던 왕립연구소의 크리스마스 순회 강연회의 티켓을 어렵사리 구해서 패러데이에게 선물로 준다. 이것이 패러데이의 인생을 바꾼 계기다 된다.

마이클 선생 인생이 바뀌시다.

그날의 강의는 당대 최고의 화학자였던 데이비 선생의 강연이었다. 당시 패러데이는 일반인만도 못한 과학적 지식을 가지고 있었으며(당시 돈좀 있는 사람들에게 과학강연 듣는것은 유흥중 하나였다고 한다. 즉 어느정도 과학에 대한 지식을 가진 사람은 많았따. ) 글도 서툴었다. 그렇지만 마이클 선생님에게는 남들에게 없는 열정이 있었으며 또한 뛰어난 기억력이 있었다. 그는 데이비의 강연에서 매우 감명을 받았으며(데이비 선생은 재미있게 강연을 잘 하는 사람으로 유명했다.) 그리하여 그는 공부를 하고 싶은 열망에 빠지게 된다.

패러데이는 자신이 듣고 배운 강연의 내용을 노트에 뺵뺵하게 기록하고 깔끔하게 정리해서 당시에는 구하기 힘들었던 칼라 잉크까지 이용해서(칼라 잉크였는지 인쇄소 직원이라 염료를 구했는지는 알 수 없다.) 왕립 연구소로 노트와 함께 조수로 써달라는 편지를 보냈다. 당연히 왕립 연구소에서는 그 노트를 보고 마이클 선생을....채용했을리가 없잖아!!!! 씹었다. 그렇지만 패러데이는 낙담하지 않고 이번엔 똑같이 다시 정리해서(망할 놈들 씹었으면 노트나 돌려줄 것이지.) 데이비 선생에세 보냈다. 사람이 없으면 잡역부로라도 써주세요.... 마침 그때 데이비 선생의 조수중 한명이 싸우고 나간 터라 이정도 열정이 있으면 잡역부로도 좋겟군...싶었던 데이비 선생에 의해 그의 잡역부로 들어가게 된다. 패러데이의 인생이 변하던 순간이었다.

세계 전자기 학의 역사를 바꾸어 놓은 이 운명적 노트는 지금 남아있지 않다. 불행히도 그 당시 이 노트를 본 사람은 그 노트의 작성자가 그렇게 위대한 학자가 될 걸 몰랐던 것 같다. 하지만 기록에 의하면 그 노트는 그다지 대단한 것은 못 되었던 것 같다. 그 강연을 듣던 당시 패러데이의 과학 실력이란 것은 좀 양식있는 지식인만도 못한 수준이었기 떄문이다.

여하간 데이비 선생의 잡역부로 들어가게 된 마이클 선생은 청소 , 정리 ,  실험 기구 닦기 등등 일을 하였다. 그렇지만 눈썰미 강하고 눈치 빠르며 오랜시간 인쇄소에서 일해 잡일에는 잔뼈가 굵은 패러데이는 맡은 일을 아주 잘 해냈으며 또한 배우고자 하는 자세가 강해서 데이비 선생이 실험을 할떄면 언제나 주변에서 그 실험을 유심히 관찰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자기 일은 다 해냈으니 데이비 선생의 마음에 들지 않았을 리가 없다. 그는 데이비 선생의 정식 조수로 채용되면서 과학자로서의 인생을 시작하게 된다.

데이비 선생의 조수로서 그는 선생의 업적을 많이 돕게 된다. 데이비는 유명학 학자였으며 떄문에 패러데이를 데리고 외국으로 나갈 기회가 많았다. 데이비 선생의 인맥은 그대로 패러데이에게 이어졌으며 그것은 나중에 그의 연구 업적에 도움이 된다.

그렇지만 데이비 선생이나 그의 부인은 패러데이를 그다지 대단하게 생각하지는 않았던 모양이다.  정식 조수로 채용되어 따라간 것이지만 그는 언제나 스승 부처의 시중을 들어야 했으며 청소 , 빨래등도 맡아서 해야 했다. 그렇지만 패러데이는 불평 한마디도 없었다. 특히 데이비 부인은 패러데이가 천민(평민이라고 해 두자) 출신이라고 매우 업신 여겼는데 이는 데이비가 죽고 패러데이가 영국 최고의 과학자의 반열에 오른 다음에도 사라지지않았다고 한다.

패러데이 영광의 날이 찾아오다.

여하간 스승인 데이비의 연구를 돕던 패러데이는 스승과 같은 연구를 할 수 없다는 일념으로 자신은 스승의 파트인 화학과는 다른 전자기 ??을 연구하게 된다. 사실 수학에 대해 깡통에 가까웠던 패러데이에게는 대단한 모험이었지만 그의 스승에 대한 존경심은 대단한 것이었다. 패러데이는 워낙 연구심이 강하고 뛰어난 사람이었기에 금방 자잘한 여러 성과를 냈으며 그럭저럭 그의 이름은 알려지게 되었다. (절대 유명한 것은 아니고 데이비 조수 중 패러데이라 놈이 있다더라..정도였다.)

그러던 중 그는 당시 유럽에서 화두가 되던 전자기 유도 법칙을 발견해 낸다. 뭐 ....설명해야 머리 아프니 법칙에 대한건 넘어가구 하여간 고리타분한 학자의 식에 파묻혀 있던 사람들은 절대 생각치 못햇던 시장통에서 돈을 주어야 물건을 얻을 수있다는 개념이 머릿속 깊이 박혔던 패러데이만이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에너지 보존 법칙을 이용했던 것이다.

전자기 유도 법칙의 발견으로 그는 일약 스타덤에 오른다. 그 뒤 그는 여러 굵직한 논문들을 발표하며 영국 최고의 과학자라는 평을 듣게 된다. 그의 발견은 영국 뿐만이 아니라 전 유럽에 급속도로 퍼져 나갔으며 스승인 데이비조차도 얻을 수 없었던 명성을 얻게 되었다.

마이클 선생 스승에게 미움받다.

패러데이가 영국의 권위있는 왕립학회에 들어가게 되었을 떄 그것을 반대한 사람이 있었다. 그것은 불행히도 패러데이의 스승인 데이비였다 데이비는 패러데이에게 잘 해 주기는 했지만 그가 그렇게 위대해 질지는 몰랐던 모양이다. 패러데이가 잘 나가자 데이비는 삐졌고. (실상 전자기 법칙 발견에 대한 것도 데이비에게 먼저 보고 했다고 한다. 데이비가 그 가치를 몰라봤을 뿐...) 패러데이보고 무식쟁이가 운이 좋았을 뿐...이라고 비난했다. 그렇지만 우리의 위대하신 마이클 선생은 한마디도 자기 항변을 하지 않았으며 자신의 발견은 스승님의 도움으로 이루어진 것...이라고 말했다.(처음부터 다시 말하지만 데이비의 전공은 화학이다. 그가 패러데이를 도와주었을 확률은 거의  0% 다.) 게다가 그는 스승님의 말대로 자신은 왕립 학회에 들어갈 자격이 없다고 하며 왕립 학회 입회를 거부하게 된다.

이러자 난리가 난것은 왕립 학회 쪽이었다. 당장 데이비에 대한 비난이 쏟아져 나왔다. 데이비는 별 수 없이 자신의 주장을 철회했고 패러데이는 왕립학회에 들어갈 자격을 얻었다. 그렇지만 패러데이는 지금 자신이 학회에 들어가면 스승의 얼굴에 먹칠을 하게 된다며 계속 자리를 거부하게 된다. 그가 왕립학회에 들어간 것은 스승인 데이비가 패러데이에게 직접 왕립학회에 들어가라고 "허락" 한 이후였다.

비록 데이비는 패러데이를 비방했지만 마이크 선생은 절대 자신을 키워준(?) 데이비 선생의 은혜를 잊지 않았다. 그는 데이비 선생의 강연을 언제나 도왔으며 그의 논문에는 언제나 "존경하는 데이비 선생님께" 라는 말이 들어갔다. 그는 언제나 왕립 연구소 지하 , 다락방에 살았으며 그 이유는 데이비가 왕립 연구소 소장이었기 떄문이었다. 그가 왕립연구소를 나온것은 죽기 9년 전이었다.

결국 이런 패러데이의 정성은 스승을 감동시켜 스승인 데이비는 자신의 옹졸함을 패러데이에게 사과한다 그렇지만 패러데이는 스승인 데이비가 잘못한 것은 없다며 스승을 두둔해 준다. 마이클 선생의 스승에 대한 존경심은 정말 고금을 통털어서도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패러데이에 못 미치지만 여러가지 위대한 발견을 했던 데이비는 죽을떄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 내 인생에 걸쳐서 위대한 발견을 여러가지 했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위대한 발견은 바로 패러데이를 발견한 것이었다" 라고

패러데이 민중들과 과학을 함께하다.

데이비가 2대 소장으로 있다가 물러나고 그는 스승의 명을 받들어 왕립 연구소의 3대 소장으로 취임하게 된다. 그가 있었던 시기는 영국 과학이 가장 민중과 친했던 시기라고 한다. 마이클 선생은 보통 학자들이 귀찮아서 잘 하지도 않는 특별 강연을 매주 뺴먹지 않고 함으로서 일반인들에게 과학 상식을 전하려고 노력했다고한다. 그 이유는 그가 과학에 발을 내딛게 된 데이비의 크리스마스 특별 강연을 생각했던 것인데 패러데이의 실험은 쉽고 재미있어서 청중들이 좋아했다고 한다. 또한 그는 표를 구할 수 없지만 구경을 원했던 많은 수의 빈민들에게도 사재를 털어 강연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고 한다. 그는 절대 자신의 조수들에게 실험을 맡기는 일 없이 직접 강연을 하였다고 전해지며 강연 전에는 반드시 실험을 미리 선행해 보곤 했다고 한다. 그가 이런 실험 자료를 모아서 알기 쉬운 과학 지침서로 낸 책이 바로 "양초의 과학이다 이 책은 그가 직접 쓴 것은 아니고 그의 강연을 정리해서 모아놓은 것인데...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지금도 과학 교양 지침서로 읽히는 매우 유명한 책이다..관심 있는 사람은 읽어볼것.

마이클 선생 끝까지 스승 뒤에 남고자 한다.

이미 스승이 죽기도 전에 스승을 능가해서 영국 최고의 과학자가 된 패러데이는 국왕에게 왕립학회학회장으로 취임할 것을 부탁받는다 그렇지만 그는 스승이 앉지도 않았던 자리에 앉을 수 없다며 끝내 그 자리를 고사하고 만다. 또한 그는 죽기 직전까지 그가 처음에 있었던 왕립 연구소의 지하실을 떠나지 않았으며 왕이 보다못해 페러데이에게 집을 사주고 짐을 다 싸서 옮겨버린 다음에야 나갔다고 한다. 또한 마이클 선생은 죽어소 웨스트 민스터 사원에 묻어주겠다는 국왕의 부탁도 정중히 거절한다..그냥 조용히 ?? 교회의 동쪽에 조용히 묻히게 된다.(나중에 이 사람 따라서 거기 묻힌 위대한 사람들 꽤 많다..--;;) 패러데이보다 못한 사람도 웨스터 민스턴에 많이 묻히지만 그는 끝까지 겸손했던 것이다.

전자기 학의 아버지.

전자기 학을 완성했다는 맥스웰이 업적을 이룰수 있게 기초를 제공한 패러데이 선생 그는 전자기가 앞으로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고 예언하였다.(그래도 이정도는 상상 못햇을 것이다. ) 어느날 크리스마스 강연에 이런 에피소드가 있었다고 한다.
마이클 선생의 전자기학 실험을 본 한 부인이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패러데이 선생님. 그렇다면 그 전자기라는 것으로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우리 마이클 선생은 정직하게 대답했다고 한다.
"지금으로서는 그다지 많은 일들을 할 수는 없습니다."
아줌마의 답변
"그렇다면 그것을 공부할 필요가 없는 것 아닌가요?"
그러자 패러데이는 웃으며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부인 지금 부인이 안고계신 갓난아기도 지금은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그는 가장 위대한 학자는 아니지만 가장 인간적인 학자가 아니었나 싶다. (사람이 좋았던 탓인지 69.11 세 까지 평온하게 살다가 죽었다고 한다. 죽기 직전까지 실험 하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