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로 타르탈리아


아래글은 Newton 10월호에 실린 글입니다. 글쓴이는 모즈이즈미입니다.

대수학은 아라비아에서 시작되었다.

현재의 대수학으로 통하는 길을 최초로 개척한 것은 아라비아의 수학자 알 화리즈미(이다. 그는 820년에 '알 게브르 왈 무콰발라(Al gebr wal muquabala'라는 제목의 책을 출판하였다. 여기서 알 게브르는 '이항', 왈 무콰발라는 '돌유항의 정리'라는 의미이다. 즉 이 책의 제목은 '이항과 동류항의 정리'라는 의미이다.

실례에 근거하여 여기에 나온 '이항과 동류항의 정리'의 의미를 설명해 보다. 이를 테면 1차방정식 3x-1= x+15를 푸는 경우에 우선 미지수 x를 포함하는 항을 좌변, 포함하지 않는 항을 우변으로 '이항'하고, 이렇게 하여 얻어진 좌변 및 우변에 있는 '동류항의 정리'를 이용하여 각각 다음과 같은 방정식을 얻는다.

3x-1=15+1, 2x =16

이렇게 하여 얻어진 최후의 식으로부터 구하는 답이 x=8임을 알 수 있다. 즉 1차방정식으로 대표되는 방정식을 푸는 경우에는 '이항과 동류항의 정리'가 중요하다. 이러한 뜻에서 알 화리즈미는 책의 제목을 '이항과 동류항의 정리'라고 했던 것이다.

그의 이 책은 그후 라틴어로 번역되어 유럽에 널리 읽혀졌다. 그 무렵에는 이 책의 제목도 그대로 유지되었다. 그러다가 제목 중 두 번째의 말 왈 무콰발라가 마침내 버려지고, 아프ㅢ 말 알 게크브르가 남았다. 그리고 이것이 현재 대수학을 가리키는 영어 앨저브라(algebra)의 어원이 된 것이다. 라틴어로 번역될 무렵 그 자신의 이름도 알고리즘으로 바
뀌었다. 이 알고리즘 역시 '계산할 때의 일련의 규칙모음'을 의미하는 말로서 현재도 사용되고 있다.

인쇄기술의 발명으로 아라비아 문화가 전해졌다

1차방정식의 해가 구해지면 다음에는 2차방정식을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 이차방정식을 가장 일반적인 형태

ax²+bx+c=0

로 나타내는 것은 인도의 수학자 아리아바타(476∼550?) 및 바스카라2세(1114∼1185)등이다. 이 식에서 a, b, c는 지기수를 나타낸다. 특히 바스카라는 이 방정식의 일반적인 해의 공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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를 이끌어냈다.

프랑스군에 의해 장애를 입어 일생동안 입이 부자연스러웠다

13세기부터 15세기에 걸쳐 유럽에서는 전쟁과 역병이 계속 일어나 그 문화는 오랜 동안 정체 상태였다. 그러나 15세기 중엽 독일에서 인쇄술이 발명되어 그리스나 아라비아의 고전이 차례로 번역 출판되었다.

이 무렵이 되어서야 비로서 유럽에서도 수학에 사용되는 기호의 정리가 이루어졌다.
이 무렵부터 사용된 기호로서는 +, -, ×, =,>,<,√ ̄ 등이 있다. 알파벳 가운데 처음 나오는 a, b, c등으로 기지수를, 마지막으로 나오는 x, y, z등으로 미지수를 나타내게 된 것도 이 무렵이다 알파벳 기호를 이러한 식으로 사용할 것을 최초로 제안한 것은 해석기하학의 창시자인 프랑스의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르네 데카르트(1590∼1650)이다. 이 무렵에는 수학 시합이 유행하였다. 두 사ㅏ람의 수학자가 서로 같은 수의 문제를 내고, 정해진 기간에 보다 많은 문제를 풀면 이기는 시합이다. 이러한 수학 시합에 대비하여 당시의 수학자 중에는 자신의 발견을 다른 사람에게 알려주지 않고 비밀로 해 두는 사람도 있었다. 그 결과 일어난 사건의 하나에 대하여 뒤에서 서술하기로 한다.

1차 및 2차방정식의 해는 이미 구해져 있었기 때문에 당시의 과학자들의 관심은 일반적인 3차방정식

ax³+bx²+cx+d=0 ( a≠0)  (1)

의 해에 쏠려 있었다. 그 무렵 이탈리아에 니콜로 타르탈리아(14991577)가 있었다. 그는 이탈리아 북부의 브레시아에서 태어났다. 어릴 때 아버지와 사별했기 때문에 빈곤하게 자랐다. 1512년 프랑스가 브레시아를 점령했을 때 칼에 찔려 장애를 입었다. 회복 후에도 입이 자연스럽지 못하여 '말더듬이'를 의미하는 '타르탈리아'가 그의 통칭이 되었다. 그의 본명은 폰타나이다. 이러한 가운데서도 그는 독하으로 수학을 공부하여 1621년 베로나에서, 1634에 베네치아에서 수학교사가 되었다.

수학시합에서 압승을 거두다

그 무렵 그는 볼로냐 대학교수인 시피오네 델 페로(1465∼1526)가 쓴 책을 읽고 3차방ㅈ어식의 해법에 흥미를 가졌다. 1535년 타르탈리아는 페로의 제자인 피오르와 수학시합을 하기로 하였다. 시합일은 2월 22일로 예정되었다. 이날 서로가 30개씩 문제를 내고 이훌 50일동안 보다 많은 문제를 푼 사람이 이기기로 한다고 약속하였다. 이 시합에 출제되는 문제 중에 3차방정식이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타르탈리아는 그 준비에 열중하였다. 그리고 시합일 10일전에

y³+3py+q=0 ( a≠0)  (2)

이라는 형태의 3차방정식의 해를 발견했다. (2)에서 p 및 q는 기지수, y는 미지수이다. 이러한 준비 덕택에 수학  시합 당일에 타르탈리아는 피오르가 낸 문제를 2시간 만데 전부 풀어 번린데 비하여 피오르는 타르탈리아가 낸 문제를 하나도 풀지 못하였다고 한다.

일반적인 3차방정식 (1)에 비하면 타르탈리아가 푼 3차방정식 (2)는 매우 간단한 형태로 되어 있다. 미지수 y의 제곱에 관계한 항이 식 중에 보이지 않는 것이 (2)의 가장 큰 특징이다. 그러나

x=y-(b/3a) (3)

로 함으로써 가장 일반적인 3차방정식 (1)을 (2)와 같은 형태로 고쳐 쓸 수 있다. 따라서 우선 타르탈리아의 방법을 써서 (2)의 해 y를 구하고, 이것을 (3)에 대입하면 가장 일반적인 3차방정식(1)의 해를 구할 수 있다. 그러한 의미에서 타르탈리아는 가장 일반적인 3차방정식의 해를 구했다고도 할 수 있다.

타르탈리아는 카르다노에게 배신당했다.

이처럼 훌륭한 일을 해 냈음에도 불구하고 무엇을 생각했는지 그는 자신이 구한 3차방정식의 해법을 세상에 발표하지 않았다.

여기서 타르탈리아와 같은 이탈리아 태생의 지롤라모 카르다노(1501∼1576)를 언급하여야 한다.

카르다노는 파비아에서 태어났고, 1524년에 파도바 대학에서 의학 학위를 받았다. 의학 외에 그는 천문학, 물리학, 수학 등의 넓은 범위의 문제에 흥미를 갖고 나름대로 업적을 쌓았다. 1552년부터 스코들랜드, 독일, 프랑스, 덴마크, 등으로 방랑을 시작하여 그후 볼로냐에 정착하였다. 그러나 카르다노는 약간 믿음이 안 가는 인물로,  점성술이나 도박에도 손을 댔다. 이러한 부도덕성 때문이었는지카르다노는 마침내 볼로녀ㅑ에서 투옥되었으며, 감옥에서 나와서는 로마에 정착하여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타르탈리아가 3차방정식의 일반적 해법을 발견하였다는 소문을 들은 카르다노는 그것이 알고 싶어 견딜 수 없자,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타르탈리아에게 그것을 가르쳐 줄 것을 애원하였다. 처음에는 거절하였던 타르탈리아도 다른 사람에게는 가르쳐 주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겨우 그 비밀을 카르다노에게 밝혔다. 그런데 카르다노는 그 약속을 깨고 1545년에 출판한 <멋진 기술 : ?위대한 술법>이라는 책속에서 그 3차방정식의 일반적 해법을 마치 자기 자신이 발견한 것처럼 발표하였다.(나뻣어!)

배신감을 느낀 타르탈리아는 정신이 이상해질 정도였다고 한다. 이러한 사정도 있어 현재도 여전히 3차방정식의 일반적 해법에 관한 공식은 '카르다노의 공식'이라고 불린다. 또 인쇄술이 발달하였기 때문에 그 이후로는 자신이 얻은 결과를 인쇄 형태로 최초로 발표한 사람이 그 결과의 발견자라는 생각이 학자들 사이에 정착되었다.

타르탈리아가 자신이 발견한 3차방정식의 일반적 해법을 왜 빨리 세상에 발표하지 않았는지는 지금도 수수게끼로 남아 있다. 그는 일생 동안 상당히 많은 책을 썼고, 그 안에는 카르다로보다도 뒤이기는 하지만 3차방정식의 해법에 대하여 기술한 것도 있기 때문이다.

타르탈리아의 최초의 저작인 <새로운 과학>(1537)에는 포술 문제가 다루어져 있다. 그 안에는 이를테면, 평면과 45° 각도를 이루어 포탄을 발사하면 그것이 가장 먼 거리까지 간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왜 그런가 하는 증명은 되어 있지 않다. 1546년에 출판된 <다양한 문제와 발견>안에서는 질문에 답하는 형태로 포술, 축성술, 3차방정식의 해법, 무거운 물건을 들어올리는 방법 등이 논의되어 있다. 1556년에 출판된 <개론>은 수학교과서이다.

타르탈리아는 당시 이미 라틴어로 번역되어 있던 유클리드(기원전 300년경)의 <기하학 원론>이나 부력의 법칙에 대하여 논한 아프키메데스(기원전 287∼기원전 212?)의 <물속의 물체에 대하여>등을 이탈리아어로 번역하였다. 이들 번역은 당시 겨우 르네상스의 꽃이 핀 이탈리아의 고위직 사람들에 의해 애독되었다. 이렇게 하여 마침내 갈릴레오 갈릴레이(1564∼1642)가 이탈리아에 나타난 것이다 그러나 갈릴레이가 태어나기 7년 전인 1557년에 타르탈리아는 세상을 떠났다.

타르탈리아가 세상을 떠나고 나서 약 20년동안 카르다노는 건강하게 활동을 계속하였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그는 도박을 아주 좋아하여 그것에 관계된 예컨데 다음과 같은 문제를 풀었다. '2개의 주사위를 동시에 던져 나온 눈금(수)의 합이 몇이 되는가에 내기를 하기로 한다. 눈금의 합이 몇이 된다고 하는 것이 가장 유리한가?"하는 문제이다. 두 주사위릐 눈금은 모두 1, 2, 3, 4, 5, 6의 어느 것 가운데 하나이다. 따라서 두 주사위의 눈금의 조합수는 6가지에 각각 6가지가 있으므로 전부 36가지가 된다.

이 36가지 중에서 눈금의 합이 2가 되는 것은 두 주사위의 눈금이 어느 것이나 1의 경우만이고, 경우의 수는 1이다. 마찬가지로 두 주사위의 눈금의 합이 3, 4,5, 6, 7, 8, 9, 10 , 11, 12가 되는 경우의 수는 2, 3, 4, 5, 6, 5, 4, 3, 2, 1이 된다. 즉 주사위의 눈금의 합이 7이 되는 경우의 수(6가지)가 가장 많아진다. 따라서 "눈금의 합 7에 내기를 하는 것이 가장 유리"하게 된다.

카르다노의 제자가 4차방정식의 해법을 생각해 냈다.

카르다노에게는 뛰어난 제자인 로도비코 페라리(1522∼1565)가 있었다. 그는 가난한 집에서 태어나 15세 때에 카르다노의 제자가 되었다. 페라리의 재능을 인정한 카르다노는 그를 서기로 채용하였다. 그는 선생인 카르다노의 강의를 열심히 듣고 후에는 볼로냐 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페라리의 최대 업적은 4차방정식

ax⁴+bx³+cx²+dx+e=0 ( a≠0)  

일반해를 발견한 것이다. 타르탈리아가 3차방정식을 풀었을 때의 식(3)을 모방하여 그는 x=y-(b/4a)라고 하여

타르탈리아의 식(2)와 닮은

y⁴+py²+qy+r=0

를 얻었다. y를 미지수로 하는 이 4차방정식을 풀기 위해 페라리는 여러 가지로 궁리하였다. 그리고 어떤 3차방정식을 풀면 y를 여러 가지로 궁리하였다. 그리고 어떤 3차방정식을 풀면 y를 미지수로 하는 이 4차방정식, 따라서 또 원래의 x를 미지수로 하는 4차방정식의 일반해가 얻어지는 것을 나타냈다. 3차방정식의 일반해는 이미 타르탈리아에 의해 구해져 있다. 이러한 뜻에서 페라리의 4차방정식의 일반해를 구한 것이 된다

이렇게 하여 1차방정식에서 4차방정식까지의 일반해가 구해졌다. 앞에서 말한 1차방정식 및 2차방ㅈ어식의 해가 그 좋은 예인 것처럼, 이들 일반해는 이 방정식 내의 계수 a, b, c, +, -등의 가감승제와 제곱근 등의 거듭제곱근에 의해 나타내진다. 계수의 가감승제와 거듭제곱근으로 나타내지는 해를 일반적으로 대수해라고 한다. 즉 페라리의 일에 의해 1차에서 4차방정식까지의 해가 모두 대수해임이 알려진 것이다.

마침내 n차방정식의 해가 구해졌다.

이렇게 되면 남은 문제는 5차 이상의 방정식의 일반해를 구하는 것이다. 그것이 1차에서 4차방정식까지와 같은 대수해가 되는지 아닌지도 흥미로운 문제이다. 페라리가 4차방정식의 일반해를 구한 이래 많은 수학자들이 이 문제에 몰두하였다. 그러나 성공한 사람은 누구도 없다. 마침내 1823년이 되어서 노르웨이의 수학자 닐스 헨리크 아벨(1802∼1829)이 5차 이상의 고차 방정식은 일반적으로는 대수해를 갖지 않는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또 그보다 앞인 1799년에 독일의 수학자 프리드리히 가우스(1777∼1855)는 n차의 고차 방정식은 x+yi라는 형태의 복소수 근을 n개 갖는다는 것을 증명하였다. 단 x 및 y는 실수이고 i는 i²=-1의 제곱근을 나타낸다. 2차방정식의 해가 어느 경우에는 이 형태가 되는 것은 고등하교 수학에서 배웠을 것이다.

아벨과 가우스가 얻은 결론이 서로 모순된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가우스가 증명하였듯이 n차의 고차방정식은 n개의 복소수근을 갖는다. 그러나 그것은 계수의 가감승제나 거듭제곱근의 조합에 의해 구해지는 대수해는 아니라고 하는 것이 아벨이 얻은 결론이다. 양자는 모순되는 것이 아니다.

이렇게 하여 n차방정식의 일반해를 구하는 문제에 종지부가 찍혔다. 이 문제의 연구를 크게 발전시킨 사람들 가운데 하나로 타르탈리아가 활약한 것이다.

타르탈리아의 이미지 (1) (2) (출처-맥튜터:Mactutor)